[이슈와 테마] ‘환율 1300원 붕괴’…시장은 왜 다시 원화를 사나

진짜 이유는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이 강세는 언제까지 갈까’가 관건

[팩트UP=이세라 기자] “단순한 환율 조정이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재조정이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태형 하나증권 환율전략팀장의 분석이다.


실제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원·달러 환율은 1380원을 위협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새 1290원대까지 내려앉았다. 겉으로는 ‘달러 약세’로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외국인 자금의 본격적인 귀환이 시작된 신호다.

 

◆ “한국 자산의 신뢰 회복”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가장 먼저 지목하는 요인은 달러 약세 (DXY 102선)와 한국 무역수지 개선, 한·미 금리 격차 축소 등 세 가지다.


예컨대 반도체 수출이 회복되며 9개월 연속 흑자를 나타내는 등 한국 무역수지가 개선됐으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동결한 반면 연준은 연내 인하 가능성을 시사해 스프레드가 좁혀지는 등 세 가지 요인이 맞물리며 외환시장에서 원화 매수세가 강화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을 표면적 이유로 보고 있다. 핵심은 더 깊다는 것이다. 외국인 자금은 단순히 단기 차익을 노린 투기성 유입이 아니라 중장기 투자자금의 재편성(rebalancing) 성격이 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홍승훈 KB증권 글로벌전략팀장은 “지금 외국인은 한국을 고평가된 위험시장이 아니라 저평가된 회복시장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이 같은 분석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코스피·코스닥의 밸류에이션 매력이다. 반도체·2차전지 조정으로 PER(주가수익비율)이 낮아진 상태에서 실적 회복 신호가 나타나자 장기자금이 재진입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글로벌 ETF 자금 재편이다. MSCI 신흥국 지수 내 한국 비중이 높아지고 중국 비중 축소분이 한국과 대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채권시장 자금 유입이다. 원화 채권의 안정성과 높은 실질금리 덕에 외국인의 국채 순매수 규모가 9개월 연속 증가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환율이 떨어져서 외국인이 들어온 것이 아니다”면서 “오히려 외국인이 들어오면서 환율이 떨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주현 NH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하락은 숫자가 아니라 심리의 변화”라면서 “외국인이 한국을 리스크가 아닌 기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 “원화 강세는 신뢰 회복의 과정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자금 유입에는 ‘금리’보다 중요한 신호가 있다. 바로 기업의 수익성 회복과 정책 신뢰다. 이런 구조적 요인들이 원화 강세의 신뢰 기반을 만들고 있으며 ‘한국은 이제 단기매매보다 장기투자의 무대’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실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 대형주의 영업이익률이 회복세로 전환하는 기업 실적 반등이다.


여기에 2025년 상반기 코스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1%를 나타내고 있어 신뢰성을 강조하고 있고 배당 확대·자사주 소각 등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으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관건은 ‘이 강세는 언제까지 갈까’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1270원선까지 추가 하락(원화 강세)를 점치고 있다. 하지만 이후에는 조정 국면을 예상하고 있다. 지금의 원화 강세는 펀더멘털이 받쳐주지만 달러 강세 사이클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 한 전문가는 “원화 강세는 결과가 아니라 신뢰 회복의 과정”이라며 “지금의 원화 강세는 단순히 환율 그래프의 하락이 아니라 외국인 신뢰의 회복이라는 보이지 않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 경제는 여전히 저성장과 고령화라는 숙제를 안고 있지만 기업의 체질 개선과 자본시장의 개방성은 외국인에게 다시 들어올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원화 강세의 이면에는 한국 리스크의 약화와 한국 기회의 부활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