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UP=정도현 기자]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새 정부가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대한 기업 인식을 조사한 결과, 기업 상당수가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기업 10곳 중 7곳 이상이 ‘중대재해 예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경총은 제조·건설업을 포함한 262개 기업을 대상으로 10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15일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대책 내용을 알고 있다고 답한 222개 기업 중 73%에 달하는 162개 업체가 “중대재해 예방 효과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로는 ‘예방보다 사후처벌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응답이 57%로 가장 많았다. 이어 근로자 책임 강화 없이 권리만 확대됐다는 의견이 24%, 원청 책임 과도 강조(8%), 현장 안전관리 부담 증가(11%) 순이었다.
기업들은 정부 대책 중 부담이 가장 큰 세부 항목으로 ‘과징금·영업정지 등 경제 제재 강화(44%)’를 꼽았다. 시정 기회 없이 곧바로 제재를 부과하는 즉시처벌 제도에 대해서도 강한 반발이 있었다. 관련 문항에 응답한 기업의 94%가 “즉시처벌은 예방 효과보다 행정 혼란만 키울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기업들은 “현장의 안전관리 체계는 지속적인 개선과 지원이 필요한 사안인데, 처벌 위주의 감독이 강화되면 오히려 위험요인을 은폐하거나 보고를 주저하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력 확보와 직결된 외국인 근로자 고용 제한 방안에 대해서도 부정적 반응이 컸다. 중대재해 발생 시 외국인 근로자 신규 고용을 막는 정책에 대해 69%가 “산재 예방과 무관하며, 중소기업의 인력난만 심화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많은 중소 제조업체들은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아 인력 공백이 생기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원하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의무화 정책도 현장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관련 문항에 응답한 기업 중 67%가 부정적이라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는 원청의 과도한 행정·비용 부담(32%)이 가장 컸다. 이어 회의체 운영의 비효율성(26%), 도급 범위 모호로 인한 책임 논란(22%) 등이 뒤를 이었다. 중소·중견기업일수록 인력과 예산이 제한적이어서 조직 운영 자체가 추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요건 완화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반대 의견은 57%였으며, 기준 모호로 발생할 분쟁 가능성(42%)이 가장 큰 우려로 나타났다. 다수 기업들은 “작업중지 제도가 남용되면 생산라인이 반복적으로 멈추면서 경영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기업들이 바라는 개선 방향은 분명했다.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처벌 중심 감독에서 지도·지원 중심으로의 전환(44%)’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근로자 안전보건 책임 확대(37%), 실행 가능한 매뉴얼·가이드 확충(35%) 등이 뒤를 이었다. 경총은 “국내 중대재해 처벌 규정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며, 대표이사 실형 사례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제재 강화는 예방 효과보다 기업 활동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경총은 “안전은 사전 예방과 현장 개선이 핵심인데 현재 대책은 근로자 책임 요소가 배제되고 기업 제재만 강화되는 방향”이라며 “정부가 기업의 실무적 부담을 고려한 지원 중심 정책으로 방향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