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UP=설옥임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HL그룹의 지주사 HL홀딩스와 계열사들이 정몽원 회장의 두 딸이 100% 지분을 보유한 사모펀드 ‘로터스프라이빗에쿼티(이하 로터스PE)’에 대규모 자금을 출자한 사안에 대해 본격 조사에 착수한 사실이 확인됐다.
공정위의 현장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대기업 집단에서 사모펀드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내부거래 문제를 들여다보는 첫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팩트UP>에서는 공정위가 HL그룹의 ‘우회 출자 구조’에 주목한 이유를 추적했다.
◆ “2170억 원, 어디서 어디로 흘러갔나”
공정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HL홀딩스는 지난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총 2170억원을 로터스PE가 참여한 펀드에 출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출자가 HL위코(지분율 100%)와 HL D&I(23.78%)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구조에 대해 지주사가 직접 투자할 경우 따라붙는 공시 의무가 크게 줄어든다며 공시 회피 가능성을 지적했다. 실제 로터스PE 관련 출자 내용은 공정위 공시에는 포함됐으나 사업보고서와 분기보고서 등 정기 공시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HL홀딩스는 이와 관련 해당 출자는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졌으며 특수관계자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사실 로터스PE는 2020년 11월 출범 당시부터 정 회장의 장녀 정지수씨와 차녀 정지연씨가 각각 50%씩 지분을 소유한 구조였다. 초기 등기임원 중에는 HL그룹 계열사 출신 인사들이 포함돼 있었고 현재도 직원 수는 3명에 불과하다. 대표 역시 투자 관련 경력이 공시상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터스PE는 설립 4년 만에 총운용자산(AUM) 36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HL그룹이 사실상 유일한 투자자(LP) 아니냐는 업계 평가가 나왔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로터스PE는 대부분을 공동 GP로만 참여하고 있고 단독 펀드 결성 이력이 없다”며 “출자금 대부분이 HL 계열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 “손실은 계열사, 수수료는 PEF로”
업계에 따르면 로터스PE가 집행한 투자 성과는 최근 수년간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2023년 말 기준 투자금 대비 평가 손실은 436억원에 달했다. 특히 WCP(761억원 손실)와 우성플라테크(187억원 손실)에서 부정적 성과가 크게 반영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터스PE의 운용보수 및 성과보수는 꾸준히 증가해 당기순이익은 2021년 3억원에서 2022년 14억원, 2023년 43억원으로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손실은 그룹 계열사가 부담하고 운용 수익은 오너 일가가 전액 소유한 PE로 귀속되는 구조라고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승계 정지작업 논란도 나오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로터스PE 수익이 오너 일가의 HL홀딩스 지분 매입 자금으로 이어졌는지 여부다.
정 회장의 두 딸은 2024년 1월 HL홀딩스 지분을 각각 1.14%씩 추가 매입해 지배력을 확대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지분 매입 재원의 출처로 배당소득·투자이익·증여·근로소득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결과적으로 로터스PE가 승계 자금의 통로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관측은 현재로서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공정위도 조사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가 하면 HL위코의 출자 능력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출자 주체 중 하나인 HL위코는 2023년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로터스PE에 출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HL홀딩스의 유상증자 및 차입금 공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구조에 대해 업계에서는 결국 지주사의 자금이 계열사를 거쳐 자녀 소유 펀드로 흘러간 셈이라며 부당지원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 “대기업-사모펀드 결합에 대한 첫 정밀 검증”
업계에서는 현재 자사주 무상증여 시도 또한 ‘지배구조 논란’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HL홀딩스는 지난해 보유 자사주의 84%에 해당하는 47만여주(160억원)를 신설 재단에 무상 출연하려다 주주 반발로 계획을 철회했다.
해당 무상출연은 회사의 누적 순이익 300억 원 중 절반 이상이 손실로 잡힐 수 있는 구조여서 당시에도 대주주에게 유리한 방식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편 공정위는 로터스PE 출자 과정에서의 부당지원 여부, 자회사 경유 구조가 공시 의무 회피에 해당하는지, 결과적으로 총수 일가 지배력 확대에 활용됐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라 과징금 부과, 경영진 제재, 내부거래 구조 개선 명령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HL그룹은 법령에 근거한 절차대로 출자가 이뤄졌으며 승계와는 무관하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혀진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의 이번 조사가 단순한 내부거래 이슈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며 “대기업 집단의 오너 일가가 사모펀드를 활용해 계열사 자금을 이동시키는 새로운 구조를 처음으로 정부 기관이 들여다본 사례라는 점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의 순환출자나 일감몰아주기와는 다른 방식의 구조”라면서 “공정위의 이번 조사 결과는 향후 재벌 지배구조 규제의 방향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