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UP=설옥임 기자] 최근 CJ프레시웨이가 복지시설 납품 과정에서 ‘기부금 협약서’를 함께 체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복지 현장의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이른바 ‘기부금 영업’이 그것이다.
기부라는 이름으로 복지시설과의 관계를 맺고 그 대가로 납품 기회를 확보하는 구조다. 복지와 상생의 이름 아래 기부와 거래의 경계가 무너진 회색지대가 형성돼온 셈이다.
◆ “기부는 선의였을까, 거래였을까”
CJ프레시웨이는 최근 3년간 전국 약 480곳의 복지시설에 총 135억원 규모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회사에서는 이와 관련, 기부는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이며 납품 계약과는 별개로 진행돼 왔고 향후 모든 기부금 영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재계와 <팩트UP> 취재에 따르면 업계의 시각은 엇갈리게 나타나고 있다. 기자가 만난 한 중견 식자재 유통업체 관계자는 “계약 이후 지역사회에 물품을 기부하는 경우는 있어도 계약 체결 단계에서 기부 협약이 포함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도 “기부를 하지 않으면 납품이 어렵다는 말이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면서 “기부금이 납품 단가나 조건에 영향을 줄 경우 이는 공정 경쟁을 해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사실 복지시설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납품 계약은 각 시설이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입찰 시스템이 불투명하고 시설 운영자 재량이 크다 보니 기부금이나 후원금이 ‘계약의 윤활유’처럼 작동할 여지가 생기기 일쑤다. 이처럼 복지시설의 재정 취약성과 제도적 관리 부실이 결합되며 기부금이 영업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복지시설 원장은 “기업입장에서는 선한 의도로 후원금을 주는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납품과 연결되는 구조가 되면 부담스럽다”면서 “기부금이 복지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업체에는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번 논란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처음 공식 제기됐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CJ프레시웨이가 납품 단가를 인상한 뒤 일부를 기부금 형태로 돌려주는 구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은 해당 사안을 ‘관행 조사’ 차원에서 검토 중이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이와 관련 “복지시설 기부금 지출이 실제 기부로 볼 수 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일각에서는 당장 법적 처벌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번 조사가 복지시설 납품 시장의 투명성 전반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관행인가, 구조적 문제인가”
기자가 만난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공헌은 복지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라면서 “하지만 기부가 거래 조건으로 비쳐질 때 사회적 신뢰는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CJ프레시웨이의 이번 논란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라는 점이 더 큰 우려를 낳는다며 파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 회계 전문가는 “기부가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는 기부가 거래와 결합할 때 선의가 이익 계산으로 바뀐다는 점”이라며 “지금의 제도는 기부와 납품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만큼 공공성과 회계 투명성을 확보할 장치가 필요이에 대해 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기부와 납품을 분리하지 못한 제도의 문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복지시설의 계약 과정에 대한 외부 감사가 거의 없고 기부금 회계 역시 공시 의무가 약하기 때문에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를 기부했는지 또 그 돈이 실제로 어디에 쓰였는지 외부에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공정거래·회계 전문가들은 ▲기부 협약서와 납품 계약서의 완전 분리 ▲복지시설 기부금의 사용내역 공시 의무화 ▲기업 사회공헌 회계기준의 투명화 등의 제도 개선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세 가지가 지켜지지 않으면 선의의 기부조차 거래의 포장지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제기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논란은 복지시설 납품 시장 전반의 구조적 불투명성과 제도적 사각지대가 드러난 사건으로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면서 “기부가 진정한 사회공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투명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