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UP=이세라 기자] “한 12~13민원 들어가는 것 같다. 지금은 이틀마다 주유를 한다. 그전에는 3일마다 했다. 부담이 너무된다.”
서울 성북구 한 주유소에 만난 화물차 운전자의 하소연이다. 그는 전쟁이 빨리 끝나서 지금 원유가 좀 내려가면 좋겠다고 푸념했다.
“매일 자동차를 끌고 다녔는데 지금은 뚜벅이다. 기름값 부담과 차량 5부제의 영향으로 현재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지만 그래도 난 편이다. 주변에서 어쩔 수 없이 차를 몰아야 하는 생계형 운전자들은 시름이 깊은 것을 보면 안쓰럽다,”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40대 직장인은 서울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른바 '뚜벅이족'이 한 달 사이 100만명 가까이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기름값이 빨리 예전 수준으로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2000원은 숫자가 아니라 신호다”
서울 시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서면서 소비자 체감 물가의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유가 충격이 다시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승을 일시적 현상이 아닌 물가·금리·소비를 동시에 압박하는 복합 위기의 시작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휘발유 2000원 돌파를 단순한 가격 이벤트로 보지 않고 있다. 물가 상승 재점화, 금리 정책 제약 확대, 소비 위축 심화로 이어지는 복합 경제 압박의 시작점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 상승은 단순히 차량 유지비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유가는 산업 전반의 ‘기초 비용’으로 물류·운송비가 오르면 식료품, 외식, 생활용품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상승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특히 국제유가 상승과 함께 환율까지 오르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 커지고 있는 붕위기다.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 구조상 환율 상승은 곧바로 국내 유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한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름값이 모든 가격을 밀어 올린다”면서 “여기에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감산 정책까지 맞물리며 공급 측 압박도 이어지고 있고 결국 ‘유가→물가’로 이어지는 전이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사실 유가 상승은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물가가 다시 상승 압력을 받게 되면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 대신 동결 또는 추가 인상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현재 경기 상황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미 내수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기업 투자와 소비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물가를 잡자니 경기가 꺾이고 경기를 살리자니 물가가 자극되는 전형적인 ‘정책 딜레마’가 재현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분석가는 “가장 빠르게 영향을 받는 것은 소비로 기름값 상승은 가계의 필수 지출을 늘리고 이는 곧 다른 소비 여력을 줄인다”며 “출퇴근 비용 증가나 배달비 상승, 여행·외식 지출 축소 등과 같은 변화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매출 감소로 이어지며 내수 전반을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증권업계 한 애널리스트는 “고유가 충격은 기업 실적에도 직격탄인데 업종별로 보면 영향은 뚜렷하게 갈린다”면서 “물류·택배의 경우 운송비 상승으로 마진이 감소하고 항공·해운의 경우 유류비 급등으로 비용 구조가 악화되고, 유통업계의 경우 소비 둔화와 비용 상승의 이중 압박을 받는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반면 정유업계는 단기적으로 정제마진 확대에 따른 수혜가 가능하지만 유가 변동성이 커질 경우 실적 안정성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며 “결국 기업 전반에서 비용 리스크와 수요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되는 국면으로 고유가 장기화 시 소비 위축은 일시적 조정이 아니라 구조적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 “변수는 유가, 환율, 정책”
현재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이 지난 2022년 고유가 국면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당시에도 유가 급등 이후 물가 상승, 금리 인상, 소비 둔화 순으로 경제 전반이 압박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시장에서는 현재를 ‘고유가 사이클의 초입’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결국 이번 고유가 흐름이 단기에 그칠지 아니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장기 변수로 자리 잡을지는 앞으로의 유가와 정책 대응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투자업계 한 시장 분석가는 “향후 흐름을 좌우할 핵심 변수는 “국제유가(중동 리스크, 공급 정책)와 환율(원화 약세 지속 여부), 정부 대응(유류세 인하, 물가 정책) 등 세 가지”라며 “특히 유류세 추가 인하 여부는 단기적으로 체감 물가를 좌우할 가장 직접적인 정책 수단으로 꼽을 수 있다”고 지목했다.


